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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위인 - 신 사 임 당

역사이야기

by 고망띠네 2016. 7. 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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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위인 - 신 사 임 당

 

 



조선시대 여류문인, 서화가 신사임당은 호이며,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 하고 자수, 바느질, 솜씨가 좋았으며 특히 시와 그림에 뛰어났다.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예술에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훌륭한 효녀로서, 훌륭한 어머니로서, 또 어진 아내로서 우리나라 여성의 모범이 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자녀교육은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정성된 힘이 매우 크다. 자기자식이 공부 잘하고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자녀되기를 누구나 원한다. 

그러나 정성과 마음만으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즘에는 국가교육기관, 많은 교육학자, 수많은 교수 및 교사가 있어 교육목표가 뚜렷이 세워져 있고 또 각 사설 학원도 있고 부모들도 수준급 교육 이수 자이지만,
그시절은 자녀교육 체계가 뚜렷하지 못했으며 부모들도 그의 문맹자이었습니다. 

특히 여자 교육은 완전히 없는 상태에서 신사임당은 자아개발을 완성하여 체계가 확실한 목표를 세워 인간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가공할 만한 일을 해 낸 것이다.


신사임당의 교육사상
오늘날의 어머니는 자녀에 대한 헌신보다 자아를 위한 정신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자아와 개성을 살리려고 애를 쓴다.
예나 지금 이나 자아 또는 개성이 없는 여자가 없지만 여자가 결혼을 하고서 까지 지나치게 이 개성을 고집하고 자아를 내세우게 된다면, 과연 가정이 원만하고 가정답게 될지 의문이다.
오늘날 가정의 파탄은 대개 이러한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여성은 현모가 되기 위하여 몸을 닦는 것이 그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로 되었다.
그 집안에 시집 와서 자녀들을 낳고 제대로 사람답게 기르려면 아마도 현모가 되는 조건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려운 유교적도덕과 가정환경 속에서도 일단 어머니가 되는 순간부터 현모로의 몸가짐을 바로 잡으며 자녀교육에 헌신하였다.
신사임당은 모든 희비애락을 겪으며 한가정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신사임당은 율곡 형제를 가르치느라고 일생동안 놀이 한번간 일이 없다는 일화를 우리들에게 남겨 주고 있다. 사임당은 시,서,화의 여류명인일 뿐 아니라 뛰어난 인격자이면서 덕이 높은 현부인이요, 어버이에게 지극한 효녀이면서 어진 어머니 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신사임당은 그 성품과 행실이 현숙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신사임당은 자제들에게 그 처신이 항상 온화하면서도 엄숙한 태도로
○ 부모 섬기는 도리, ○형제간에 우애하는 도리, ○친척간에 화목하는 도리, ○제사 받드는 도리,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도리, ○친구 사귀는 도리, ○남편 섬기는 도리, ○시부모 섬기는 도리, ○동서간에 화목하는 도리, ○자식 기르는 도리, ○의복과 음식 만드는 도리,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 ○재물을 아껴쓰는 도리등 주의 깊게 가르쳤다.

그뿐 아니라 자녀교육의 목표를 몸가짐에 두면서도 장차 나라에 충성하고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에 힘썼다. 이상과 같이 신사임당의 자녀교육은 이론으로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를 그 자녀들에게 실천에 옮기기를 아주 돈독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 자녀들은 우리역사에서 수기치인의 도를 완수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는 신사임당의 교육사상을 통하여 어머니의 좌표와 어머니의 「어머니됨」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신사임당은 천추에 변하지 않는 사표가 될 것이다.



 1504년(연산 10년) 10월 29일. 출생
    현재의 강릉시 죽헌동 외가인 오죽헌에서 신명화공의 둘째 딸로 태어나다. 

 1510년(중종 5년). 7세
    어려서 외조부 이사온이 교훈과 어머니의 훈도 아래서 자랐다. 안견의 화풍을 받아 산수, 포도, 
    풀벌레 등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유교의 경전에 통하고 글씨와 문장에도 능할 뿐 아니라 
    자수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이다. 

 1516년(중종 11년). 13세
    부친 신명화공이 진사 시험에 오르다.

 1522년(중종 17년). 19세
    덕수이씨 원수공에게 출가하다. 출가 후 그대로 친정에 머물러 있던 중 11월 친정 부친이 별세하다. 

  1524년(중종 19년). 21세
    서울에서 맏아들 선이 태어나다. 

 1529년(중종 24년). 26세
    맏딸 매창이 태어나다.

  1536년(중종 31년). 33세
    이른 봄 밤 꿈에 동해에 이르니 선녀가 바다 속으로부터 살결이 백옥 같은 옥동자하나를 안고 
    나와 부인의 품에 안겨주는 꿈을 꾸고 아기를 잉태하다. 다시 그해 12월 26일 새벽에도 검은 
    용이 바다로부터 날아와 부인의 침실에 이르러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아기를 낳으니 
    그가 바로 율곡선생이다. 율곡이 태어난 방을 몽룡실 이라고 한다.

  1541년(중종 36년). 38세
    강릉 친정에서 어머니를 하직하고 서울로 올라가며 대관령에서 시를 읊다. 서울 수진방
    (지금의 청진동)에서 시집의 모든 살림을 주관하다. 네째 아들 우가 태어나다. 서울에 
    살며 홀로 계신 친정 어머니를 그리며 시를 읊다. 

  1550년(명종 5년). 47세
    여름에 부군 이원수공이 수운 판관이 되다. 

 1551년(명종 6년). 48세
     5월 17일 새벽, 병상에서 2,3일 만에 홀연히 별세하다. 세곡을 운반하는 일로 평안도에 
     갔던 부군과 두 아들은 그날 서강에 도착하여 부인의 별세한 소식을 듣다.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 장사 지내다.



신사임당 본받을점
(1)효녀로서의 신사임당 

어려서 부모에 대한 효성이 매우 깊었다.

(2)현모로서의 신사임당 

4남 3녀의 자녀를 훌륭히 키웠다.

(3)양처로서의 신사임당 

심약한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학문에 전념하게 했다.

(4)훌륭한 예술가로서의 신사임당 

그림, 문장, 자수,바느질,붓글씨 등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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