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푸에블로 함 피랍사건 이후
자신감을 가진 북한은
좀 더 큰 도발을 행하기로 하고
정기적으로 북한 영공에 접근, 정보를 수집해가는
미 해군 정찰기 EC-121을 격추하는
대담한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EC-121은 프로펠러 비행기로 속도는 느리지만
당시로서는 최고 성능의 레이더와
전자 장비를 갖추어 이를 활용하여
북한 전투기가 뜨면 먼저 발견하고
멀리 달아나곤 했습니다.
일본 아츠기 해군기지에서 발진한 EC-121기는
동해를 통해 소련 해군 태평양 함대와
공군의 극동 공군이 포진한
블라디보스토크를 정찰하고 이어 북한 쪽을
훑으며 남쪽으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이 EC-121를 노린 것은 북한 공군의
김책 공군 대학장 김기옥 소장이었습니다.
김기옥 소장은 북한에서는 6·25 전쟁 2차 대전 때
에이스로 명성을 떨쳤던
미 공군 에이스 토마스 젤레스의
F-86 세이버 전투기를 격추한 조종사였습니다.
어랑 비행장은
김책 공군대학이 관할하는 공항으로
이곳엔 속도가 느린 MiG-21기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기옥은 평남 북창 비행장에 있는
MiG-21기 두대를
어랑 비행장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하지만
MiG-21기가 자력으로 어랑 비행장으로 날아오면
미 해군 정찰장비에
그 사실이 포착되고 경계하게 됨으로
MiG-21기를 분해해 야간열차에 싣고
비밀리에 어랑 비행장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어랑비행장에 대형 텐트를 쳐서
미군 정찰장비의 첩보를 차단한 후
MiG-21기를 재조립했습니다.
그리고는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기약하며
EC-121이 날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1969년 4월 15일 북한 공군 레이더는
EC-121이 예상한 항로로
날아오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김기옥은 즉시 두 대의 MiG-21기를 이륙시켜
바다에 바짝 붙어 날아가는 초저공 비행으로
EC-121의 예상 진행 항로 쪽으로
날아가게 하였습니다.
물론 EC-121의 레이더는 어랑 비행장을 이륙한
두 대의 비행기를 발견했을 테지만
이 당시에는 아무리 우수한 레이더일지라도
이 항공기가 MiG-21기인지 MiG-15기인지
구별할 수 없었고 EC-121 승무원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음속 전투기인
MiG-15기라 생각하고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MiG-21기 두 대는 초저공으로 바다에 붙어
EC-121기 진행 항로로 접근하다가
갑자기 치솟아 EC-121기로 돌진했습니다.
먼저 MiG-21 제1번기가
열추적 미사일 K-13을 발사했습니다.
열추적 미사일은
열이 많이 나오는 제트기를 쫓는 데는 탁월하지만
EC-121기 같이 열이 적게 나오는
프로펠러기는 놓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운 게 문제였습니다.
당시 북한의 조종사들은
안되면 몸으로라도 때우겠다는 심정으로
미사일이 맞지 않으면 공중 충돌을 해서라도
EC-121기를 격추할 것을 결의했다고 합니다.
제1번기가 최근 거리에 서 미사일을 발사하자
이어 제2번기 조종사인 현기수 대위가
K-13을 발사하였고
EC-121기는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청진 남동쪽 150Km 동해상에서 추락했습니다.
이로 인해 EC-121기
승무원 31명은 전원 사망했습니다.
미국은 강력하게 대응하여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인
USS 엔터프라이즈를 비롯
40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71 기동함대를 동해에 진입
원산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벌였고
판문점에서는 공산 측의 요청으로
290차 군사정전위가 긴박하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으나
미국의 응징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닉슨 행정부는 전술 핵무기를 사용한
보복 공격을 검토하였으나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일, 주한미군기지에는
전술핵이 있었습니다.
격추 작전에 동원된 북한군 MiG-21기 두 대는
이 공로로 '415 전투기'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 당시 미국이 다른 판단을 했다면
지금의 북한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지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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