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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밀 리 터 리

by 고망띠네 2022. 3. 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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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강릉 무장 공비 침투사건

행방불명된 1명

 

 

인민무력부 정찰국 22 전대는

총인원이 110여 명이었는데

대남 공작원 해상침투 관련 업무를

총괄하였습니다.

김정일은 당시 22 전대를 1개 군단과도

못 바꾼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작전 당시

잠수함 26명의 인원 중

정찰조 3명을 제외하 나머지는

안내원 및 승조원이었으며

이들은 조기에 진압이 되었으나

정찰조 3명은 49일간 도주를 하였습니다.

 

 

# 특이사항 #

 

- 교전 시 단발 사격 및 조준사격,

수류탄 주로 사용

- 포위 당시 하루 평균 이동거리가 20 ~ 30km

- 비가 온 직후에는 이동하지 않음

- 민가에서 물건을 훔쳐 식량을 조달

-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달아나는 대담성

- 산지 이외에 대낮에 도로를 따라 이동

- 도주 중에도 일지를 작성

(감시 병력이 코앞에 있었음에도

숨어서 기회를 보거나

아군 측의 대화를 기록)

 

 

 

 

 

# 침투 일지 #

 

1996년 9월 14일 21:00

안내원 2명과 함께 인민무력부 소속 정찰조 3명이

2km를 수영하여 해안에 침투 상륙하였고

안내원들은 다시 잠수함으로 복귀하였으며

정찰조는 군 비행장 및 레이더 기지, 항만,

화력발전소를 정찰 및 촬영하였습니다.

 

 

 

1996년 9월 16일 21:00

잠수함은 사전 침투한 정찰조의 복귀를 위해

대포동 해안가에 다시 침투하여

연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공해상 해저에서 대기하였습니다.

 

 

 

1996년 9월 17일 23:00

재연결을 시도하다가 좌초되었으며

함장의 명령으로

보안 물품과 서류 등을 파기한 뒤

그들은 강릉 안 안 진리 해안에 상륙하였습니다.

 

 

1996년 9월 18일 01:30

잠 수하 폭파/자침을 시도 이후

공작원들과 승조원들이

잠수함에서 이탈, 상륙하였고

택시기사와 68사단 해안 경계초소를 관측!

1 야전군은

전 지역 진돗개 하나를 발령합니다.

 

 

 

1996년 9월 18일 16:40

잠수함 승조원 이광수를 체포하였습니다.

아군 수색대대에 의해 항고에서 이루어진

수색 및 정찰 중 22 전대 정찰조에 처

형(잠수함 좌초의 책임을 물음)당한

승조원들의 시신 11구를 발견합니다.

 

 

1996년 9월 21일 09:30

칠성산 정상에 특전사 대원들이

헬기레펠로 투입되어

3인 1개 조를 이루어 수색을 실시하던 중

한 대원이 매복하고 있던

정찰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으나

장전이 안된 상태라서 응사가 제한되자

"적이다!"라 외치며

몸을 굴려서 옆에 절벽 아래로

수미터 추락하였으며

뒤이어 오던 이병희 중사가 즉시 응사하는 순간

적의 조준사격에 머리를 관통당하였고

맨 뒤에 있던 세 번째 대원이

즉각 엄폐하여 응사를 실시하였으나

적은 상호 엄포하며 도주하여 사라졌습니다.

 

 

1996년 10월 3일 ~ 7일

용평 스키장과 월정사 일대를 통과

 

 

 

1996년 10월 8일 14:00

평창군 탑동리 일대에서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을 오르던 민간인 3명을 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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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9일 21:00

오대산 일대에서 아군 매복조와 

30여 분간 대치 상황을 벌이다 이탈합니다.

 

 

 

1996년 10월 12일

국군 X군단 사령부를 촬영 및 감시하였습니다.

 

 

1996년 10월 14일 20:00

인제 지역 일대의 민가와 자동차에서 

식량 등을 절취해 취식하였습니다.

 

 

 

1996년 10월 16일

신남에서 인제 방면으로 차량 이동 중이던

학교 교사에 의해

도로를 따라가던 중 발견되어

아군 5분 대기조가 출동하였으나

정찰조는 도주로를 바꿔 남쪽으로 도주한 후

다시 북상합니다.

 

 

1996년 10월 20일 03:30

구름이 많고 안개가 끼던 새벽에

소양호를 수영하여 건너갑니다.

 

 

 

1996년 10월 25일

도주 중 국군 X사단 X연대를 촬영합니다.

 

BIG

 

1996년 11월 5일 04:20

연화교 매표소에서 매복하고 있던

아군 특공대원들과 조우하여 

아군 특공연대 소속 2명이

거수자를 확인하고 수하 하였으나

적 정찰조는 표준어로

"703이냐? 3대대 선임하사다. 몇 대대냐?"

"3대대 선임하사인데 어두우니 나와서 얘기하라"

라고 하면서 접근하였습니다.

방탄모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본 아군은

직감적으로 적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사격을 개시하였고

공비도 동시에 장전하면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결과 

정찰조와 아군 각각 한 명씩 상흔을 입었으며

이후 부상당하지 않은

적 1명이 도주 중 다시 돌아와

보복 공격으로 근접하여

초소 창문을 향해 난사하였으나

뒤에 있던 아군은 중간 벽에 의해 무사하였습니다.

 

 

1996년 11월 5일 07:00

아군 정보분석조와 합동신문조가

현장 일대에 도착하여

작전을 토의하던 중

직접 현장으로 올라가라고 결정을 내립니다.

기무부대장 오영안 대령을 비롯한 수사조가

현장을 살피던 도중

기무부대장이 적의 예상 도주로를 향해

불을 비추는 순간

그곳에 숨어있던 정찰조의 저격으로

기무부대장 오 대령을 포함 

아군 전사 2명, 부상 8명이 발생하였습니다.

 

 

1996년 11월 5일 08:00

아군 특공연대가

퇴로를 차단하고 압박 작전을 펼쳤으나 

안갯속에서 계속된 적의 저격으로

아군 피해가 누적됩니다.

 

 

 

1996년 11월 5일 10:00

특전사 3 여단의 장선용 상사가

배후에서 접근하여 마지막 정찰조 2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렇게 대간첩작전 49일 만에 종료되었습니다.

 

 

침투 무장공비 26명 중

13명 사살

11명 피살

(함께 침투한 정찰조에 의한 처형)

1명 생포(이광수)

1명 행방불명

 

행방불명된 그 한 명

그 한 명의 시체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렇게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미지출처 : 구글

 

 

 

 

감 사 합 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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